Duplicate

기말고사

최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라는 말을 밈처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새부턴가 우리 삶 가까이에 자리잡은 이 문구는 언뜻보면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사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가 바쁜 사람들만 사용하는 문구였다면 “코미디빅리그” 의 개그맨들이 이러한 대사로 일반 대중들을 웃기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철저하게 웃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개그맨들이 이러한 문구를 사용해 일반 대중들의 웃음을 공략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대중들 대부분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라는 문구에 공감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실제로 바쁘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사회의 대중들이 바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과 권한을 인정하는 사회 시스템은 박정희 정권 떼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자기계발의 주체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경쟁하는 사회를 만들면서부터 현대 사회에 정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때 정착된 사회의 양상은 상당히 불평등한 구조를 만듬에도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러한 양상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개인의 능력 차이에 대한 불평등을 정당하게 바라보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재능과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는 한국 사회 속 구성원들은 그들의 재능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노력을 하게 되고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그들이 재능과 노력에 부여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그 가치를 부여할 인원을 소수로 정해둔 채 사람들을 줄세우고 경쟁하게 합니다. 스스로 불평등을 추구하고, 소수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그 소수가 되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을 만든 것은 바쁜 한국인, 낮은 행복지수, 높은 자살율을 만드는 등의 부작용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화유산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한국 사회를 잘 대변하고 표현하는 정신입니다.
한국사회 능력주의의 치열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한 가지 예시는 직업으로 의사를 선호하는 풍조입니다. 종로학원에서 공개한 2023년 자연계열 정시 지원 가능 커트라인 상위 20개 학과 자료에서 이공계 학과가 전부 사라지고 모두 의예과가 선정된 것을 통해 직업으로 의사를 원하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교육부가 공개한 2020~2022년도 의대 정시 합격자 현황 자료에서 전국 의대 정시 신입생 중 현역이 21% 정도인데, 이는 단순히 의사를 원하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을 넘어서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많을 정도로 의사 선호 풍조가 심화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예시입니다.
다만, 이렇게 선호되는 의학은 한국 사회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의학과는 사뭇 다릅니다. 16세기 임언국의 침구술을 활용한 종기 치료는 17세기 허임이 침구경험방을 저술하면서 일본의 의학에 크게 영향을 미친 자랑스러운 한국의 의학 발전이었습니다. 또한 잘 알려진 허준의 동의보감은 앞선 침구 의학 전통과는 다르게 약물 의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약재 1000여 종에 대한 효능과 해당 약재들을 사용해야 하는 질병에 대해서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조선의 본초학을 크게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처럼 가까운 과거의 의학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했고, 몇몇 의학자들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어 의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선호되는 의학은 질병의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미용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디게이트에서 제시한 2023년도 전공의 모집결과 리포트에 따르면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각각 인기 1, 2, 5 위 과로 선정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미용 목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의학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의 선호 현상은 모두 건강보험료를 지급받지 못하는 시술이 많아 수익을 올리기 쉽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의사의 입장에서는 능력주의의 주요 성과인 돈이 목적이었을지라도, 겉으로는 미용 목적의 의학을 선호하는 경향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국가적 관점에서 상당히 인상깊게 바라볼 수 있는 풍조입니다. 한 국가에서 재능이나 노력 측면에서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하고, 그들이 의대에 가서 가장 선호하는 전문 분야가 미용 시술을 하는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21세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에 따라 높은 성과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것일지라도 이들의 선택 결과가 많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외모 증진에 대한 수요가 많음을, 즉 한국 사회에 펼쳐져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존재를 입증해줍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국가의 경제적인 발전, 과학적인 발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의 외모 증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국 사회에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미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AAMC (American Association of Medical Colleges) 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의 과가 선호되는 것을 보면 이는 어느정도 한국사회가 가진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고, 이러한 문화유산의 지정은 그 사회 구성원이 진행합니다. 즉, 문화유산의 지정 과정은 어느정도 그 사회 구성원들의 주관에 따르고, 그들이 아무리 객관적인 기준을 잡으려고 노력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바뀌기 마련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현재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그것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그 실체 혹은 정신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그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작위적으로 보존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오랜기간동안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미래에 남긴다는 측면에서, 어떤 것이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어떠한 의식이나 깨달음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유무를 정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21세기 한국사회의 의대 선호 풍조, 그리고 그중 미용 위주의 의학의 선호 풍조는 당시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능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능력주의의 이면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는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국가적 관점에서 훌륭한 인재를 외모 증진에 사용했던 시기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고, 이러한 관점에서는 미래에 불편문화유산으로도 취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