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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의 기준

토론 일자
2022/10/27
심장, 간장, 췌장과 같이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장기는 일반적으로 장기매매나 장기이식으로 전달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오로지 뇌사, 혹은 사망 직후의 신체에서 전달받는 경우가 많은데, 사망 직후의 신체에서 장기를 전달받는 경우에는 이미 신체적인 기능을 상실한 몸의 장기라는 점에서 해악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도 않고 전달받아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선행의 원칙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부분이 없고, 이에 따라서 문제 삼는 경우도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뇌사의 경우에는 아직 신체가 죽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람의 장기를 전달받는 것이 해악 금지의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근본적으로는 뇌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주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과 생존의 경계의 구분은 모호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확실히 살아 있는 것과 확실히 죽어 있는 것들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살아 있다고 말하고 무엇 때문에 그것을 죽어 있다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가진 판단능력의 불완전성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이는 의사가 죽을 것, 혹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있는 경우에서도 잘 드러나는 인간의 특징입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뇌사 상태의 한 사람을 죽었다고 판단하여 장기를 전달하는 경우에서도 인간은 불확실한 행위를 거칩니다. 장기를 전달받더라도 살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고, 뇌사 상태로 판단한 사람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교적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해악 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아야 하는데, 불완전한 인간이 뇌사 상태로 판단했을 뿐인 사람에게서 장기를 빼내는 것이 해악이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물론 열에 아홉은 인간이 옳은 판단을 해서 확률적으로 접근했을 때 뇌사를 죽음과 동일시하는 것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목숨에 있어서 공리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매기는 과정이기에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것도 윤리적인 판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뇌사를 죽음과 동일시하는 해석은 현재로서는 자칫하면 인간이 동일한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위험한 해석이며 뇌사의 범위와는 상관없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