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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 보고서

오죽헌: 일반적임에서 찾는 문화유산의 가치

전통적으로 유산이라 함은 선조가 남긴 것들 중 실제로 화폐가치가 있는 것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기에 문화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 혹은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러한 흐름이 생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며 보존, 보호할 만한 것들을 지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까지 이렇게 지정된 것들은 그 형태가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제도적인 것 등으로 상당히 넓고 많아 한 마디로 무엇이다 라고 표현하기엔 어려웠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의 기준이 달라질 여지가 다분하여 모호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흔히 문화유산이나 문화재로 불리는 것들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거리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지 않나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한국을 소개할 때 K-POP 을 소개하지, 국보 1호인 숭례문이나 유명한 석굴암, 불국사 등을 소개하진 않는 것에서 단적인 예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쉽게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문화유산이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TV 에서 연예인들이 간혹 해외 공식 행사에 입고가는 한복은 2022년 전통 생활관습/의생활 분류에 등재된 국가무형문화재이고,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김치의 생산 과정인 김치 담그기, 혹은 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2017년 전통 생활관습/식생활 분류에 등재된 국가무형문화재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돈의 한 종류인 지폐에도 다양한 문화유산이 그려져 있다. 특히, 화폐 속 문화유산은 앞선 한복, 김치 담그기와는 다르게 일상 생활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무형 문화재가 아닌 특별한 예시인데, 이렇게 실존하는 문화유산을 화폐 속에 넣는 구성은 화폐에 권위와 신뢰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에 한국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개념에 공감하는 한국이 아닌 다른 많은 국가들도 화폐 구성에 문화유산을 그려 넣고 있고, 반대로 이러한 구성으로부터 우리는 화폐 속 문화유산이 국가적 차원에서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화폐의 도안으로서 선정되는 인물 및 문화유산의 선정 절차는 굉장히 까다롭다. 업적과 품성이 위대해야 하고, 다양한 세대에 걸쳐서 검증 절차를 거쳤을 때 논란이 있어서는 안되며, 그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의견이 있더라도 실제로는 다양한 이유들로 반려되기도 한다. 일례로, 1972년에 만원권 전면에 석굴암 본존석가여래좌상을, 후면에 불국사 전경을 담았다가, 도안에 들어간 문화유산이 종교적인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여론이 있어 발행하지 못했던 이력이 있다. 러한 예시를 통해 비교적 명확한 기준은 아니지만 국민의 여론도 화폐 발행기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해당 사건으로 만원권에 세종대왕과 혼천의가 그려져 있고, 익히 알려져 있듯이 천원권에는 이황과 계상정거도, 오천원권에는 이이와 사임당 초충도, 그리고 오만원권에는 신사임당과 월매도가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화폐에 그려진 인물들 중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5천원권의 율곡 이이는 모자지간이라는 점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까다로운 화폐 속 인물 선정 기준에 합격하여 화폐 속에 그려졌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이 둘이 살았던 주택인 오죽헌이 5천원권의 전면, 율곡 이이의 옆에 그려져 있다. 또한, 오죽헌은 실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살았던 곳임과 동시에 그 둘과 관련된 여러 유물 및 유적들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죽헌에 방문하면 오죽헌 건물 자체와 신사임당, 그리고 율곡 이이의 역사적인 업적과 가치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강릉 오죽헌에 방문하여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오죽헌에 들어서서 처음 나오는 것은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이었다.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의 주요 소재들인 오이, 수박, 가지, 맨드라미, 양귀비, 봉선화, 그리고 원추리를 실제로 심어 화단에 조성한 것이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단순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를 그렸음에도 그것들을 굉장히 정밀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큰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그녀가 그린 그림 속 벌레를 실제 새가 쪼아먹으려 했다는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히 초충도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화단으로 구현해 놓은 것은, 실제 화단과 그에 꼬이는 벌레들의 모습을 초충도와 겹쳐 보면서 그녀의 그림 솜씨를 느낄 수 있게 해 둔 것 같았다. 아쉽게도 비가 와서 벌레들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신사임당의 양귀비와 풀거미 초충도와 실제 양귀비 꽃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니 꽃잎과 풀잎의 형태를 정말 실제와 같이 묘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하고 귀한 소재로부터 그림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흔하고 뻔한 것을 그리더라도 실제와 비슷하면서도 아름답고 특별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그녀의 그림 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뒤이어 간 곳은 율곡 이이의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율곡 이이의 동상 옆에는 공자의 말씀 중 하나인 “견득사의”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이득을 보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이는 이러한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임금의 명에 따라 학교, 가정, 사회 생활에서의 규칙 16가지를 청소년 교육 용도로 지은 책인 학교모범에서 이러한 그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학교모범의 16조 중에 “수의” 에서 그는 옳음과 이로움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비슷한 맥락에서 득실 때문에 지조를 잃어서도, 벼슬을 부귀영화를 얻는 수단으로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분명히 한다. 이러한 율곡 이이의 올곧은 성품은 현재에도 큰 귀감이 되고 있고,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오죽헌에 방문했었다. 이이의 성품은 강한 권력으로 본인의 이익을 손쉽게 챙길 수 있는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이 되었고,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게 가치 있는 생각이라는 점을 느꼈다.
율곡 이이의 동상을 지나자, 오죽헌의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과 자경문이 있었다. 이 자경문을 기준으로 오죽헌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것이었으며, 계단을 올라가 입구 안에 들어가니 오천원권의 전면에 그려져 있는 몽룡실과, 문성사를 볼 수 있었다. 몽룡실은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고,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이 보관 된 곳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오죽헌이 마치 율곡 이이의 삶과 죽음을 기록해 둔 것처럼 보였으며, 율곡 이이라는 사람을 공간으로 담은 느낌이 들었다. 해당 공간에서 문성사와 몽룡실 이름의 기원과 율곡 이이의 유년 시절의 삶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오죽헌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율곡 이이보다 지위적으로 높은 왕들도 역사에 많았고, 지을 때부터 건물 자체가 특별한 용도나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가치를 부여 받아 보존되었다는 점이었다. 업적과 공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업적이나 그 공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보존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이하게도 몽룡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오랜시간동안 보존되었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몽룡실이 율곡 이이의 업적을 제외하고도 무언가 가치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실제로 몽룡사는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주택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고, 처마를 받쳐주는 공포 구조가 주심포 양식에서 익공 양식으로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율곡 이이라는 인물이 가진 가치도 몽룡사의 평가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건축물 자체가 가지는 가치가 있었기에 보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이고, 세부적으로는 건축 양식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몽룡실과 문성사를 거쳐서 무수한 검은 대나무(오죽)가 있는 샛길 옆으로 이동하니, 안채와 바깥채를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별당 (몽룡실, 문성사) 과 바깥채를 제외한 건물들이 모두 철거되고 나머지 것들은 1996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한옥의 경우에 똑같은 집이 한 채도 없을 만큼 하나하나에서 독창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깥채와 안채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름에 햇빛을 차단하고 겨울에 햇빛이 잘 들어가는 90cm 에서 110cm를 가지는 가정집의 처마 길이가 잘 표현되어 있고, 서로 다른 높이의 굴뚝을 두어 높은 굴뚝은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낮은 굴뚝은 연기로 해충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전통적인 온돌의 방식을 사용했기에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방의 면적이 제한되어 있어서 방이 작은 양식도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채와 바깥채는 그 설계에 있어서 과학적인 원리가 많이 반영되어 있고, 그 만큼 옛날 사람들이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의미를 두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안채와 바깥채를 지나 옆으로 이동하니 어제각을 볼 수 있었다. 어제각은 율곡 이이가 돌아가신 후 약 200년 뒤에 정조 임금이 율곡 이이가 지은 격몽요결을 보시고 감명을 받아 시를 지으시고, 이 책과 율곡 이이가 쓰던 벼루를 후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보관하라는 명을 내려 지어진 건물이다. 왕의 어명으로 지어졌다고 하여 어제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지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격몽요결은 초학자들의 몽매함을 물리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가지며, 학습서로 사용되던 책이다. 다만, 율곡 이이가 생각하는 학습이 단순한 글 공부가 아닌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예법도 포함되어 있기에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거나, 부드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접대하는 등 현대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인간상이나 가치관을 정리하여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지어진 건물인 어제각 또한, 격몽요결의 가치에 힘입어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보았다.
오죽헌의 견학을 하면서 그것이 어떤 가치를 인정받고 보존되었는지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하고 정리했지만, 궁극적으로 오죽헌이 문화유산으로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았다. 문화유산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화폐에 그려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업적이 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라는 점, 공포의 건축 양식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는 점, 격몽요결이라는 가치 있는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는 점, 가장 오래된 주택 건축물 중 하나로, 과학적인 원리에 기반하여 지어졌다는 점 등 댈 만한 이유들은 많았다. 하지만 오죽헌 건축물 자체가 가지는 가치만 바라본다고 하면, 건축 양식의 변화와 가장 오래된 주택 건축물로 과학적인 원리에 기반하여 지어졌다는 점만 남는데 이는 비단 오죽헌이 아니더라도 해당 시대의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법한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는 단순히 건축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지금까지 보존된 건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화유산이라고 취급 받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오죽헌이 가지는 문화유산적 가치는 “오래되어서” 라기 보다는 “시간에 대한 동시성을 부여해서” 라고 보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건축물을 통해서 누군가와, 혹은 어떤 사건과, 시간을 넘어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해서 연결되는 것은 과거의 민족의 유대와 공동체적 의식을 향유할 수 있고, 과거의 경험을 미래를 계획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을 묶어 문화유산이 가지는 가치로 볼 수 있고, 오죽헌은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라는 구체적인 인물과 시간을 초월하여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건축 양식과 과학적 원리를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과거의 경험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남겨지는 것들도 있겠지만, 사라져갈 지식과 경험, 고취했던 의식들은 분명 국가적, 혹은 인류적 관점에서 커다란 손실로 볼 수 있고, 남겨야 할 가치가 많은 것을 보존함을 통해 이를 해결한 것이 문화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1788년 격몽요결과 율곡 이이의 벼루를 보관하라고 어명을 내린 정조 임금도 지금 우리가 문화유산이라고 지정하여 보존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생각일 수도 있다고 본다. 오죽헌은 시대를 불문하고 후대에 남기고 공유하고 싶은 가치가 분명했기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문화유산으로 불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추가로 생각해볼 점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현대의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면서 유대하여 배우고, 공유하며, 경험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 있는가이다. 신사임당은 조선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한 여성을 넘서 인간으로서 글, 그림, 시 등 다양한 부분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현명하고 어질게 자녀를 교육했다. 율곡 이이는 앞서 소개한 학교모범과 격몽요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유교적인 예를 비롯한 훌륭한 인간상을 제시했다. 둘 모두 후대가 배우고 생각할 만한 점들을 남겼는데, 놀라운 점은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현대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남녀 차별을 두지 않으려는 모습, 사교육까지 동반해서 자녀의 교육을 잘 하려는 모습, 유교 사상에 기반한 예를 갖추는 모습 모두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친숙한 모습들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현대의 사람들이 유대하여 다시금 그 가치를 느끼고 깨닫을 만한 부분들이 존재함에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보여주고 제시한 모습과 많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유대하는 것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과거부터 이러한 사회의 모습이 옳고 좋은 방향이라고 지속적으로 생각해와서 현대사회를 만들었는지, 현대 사회와 비슷한 생각을 일찍이 했던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고 그 의식을 배우려고 보존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생각과 모습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이 보여준 모습들이 고민하고 논의해 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불편문화유산의 예시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 과거의 경험들처럼 반드시 긍정적인 것에서만 배우고, 생각하고, 고취해 나갈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죽헌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언뜻 보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건축물 자체의 가치에 집중하면 당시의 주택 건물과 특별하게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가치가 “시간에 대한 동시성의 부여” 에서 온다고 해석했을 때 오죽헌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굉장히 분명했다. 시간을 초월하여 유대할 인물, 그리고 해당 인물에게서 배울 점이 명확했으며 건축물 자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과거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들, 오죽헌 건축물의 양식, 신사임당이 그렸던 초충도의 분위기 모두 상류층의 특별한 형태보다는 일반적인 평민의 모습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임에 마치 연결이라도 되는 듯이 이 두 인물, 오죽헌, 그리고 초충도까지 포함한 모든 것은 일반적인 삶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가까이 우리의 주머니 속, 지갑에 녹아 들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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