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의 거부에도 수술을 해야할까-
문제를 바꾸어서 개인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간을 기증하려고 하는 결정을 하려고 할 때를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에는 개인의 기증을 한다는 자율적인 판단과 남을 살린다는 선행이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의 입장에서는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도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위의 예시와 다르게 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환자가 보여준 개인의 자율성이 선호의 영역을 벗어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윤리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영역 (해악금지의 원칙에 위배하는 것이 아님.) 이 아닌 본인의 목숨을 끊는 영역의 윤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판단을 자율적인 판단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자율성이 단순히 온전히 개인에 의한 최종적인 판단에 있는가- 로 끝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넘어서서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인지에 대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밀러가 제시하는 자율성의 조건들에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환자가 수술을 거부한 행위는 자유롭고, 종교에 기반한 진정성을 지닌 행위로 볼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는 시점에서 숙고 후 행위를 했는지와 그의 목숨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고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더불어 전적으로 불완전한 개인에 의한 판단인지, 사회의 가치를 고려한 행위인지는 더더욱 불분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는 환자의 자율성을 온전히 인정해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더욱 명백한 선행의 원칙에 따라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 수술을 해야하는 이 시점 이전에 환자가 숙고를 하고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고 판단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했다면 오히려 선행의 원칙 쪽에서 환자가 진정하게 원하는 바를 의사가 해주지 못하는 것이 선행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 더욱 명백한 근거가 되어 수술을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